피란민 16만 명 구한 '한국의 쉰들러' 형제[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06-25 10:13   수정 2020-06-25 10:20

형은 세브란스병원 의사였고, 동생은 해군 창설 주역이었다. 함흥에서 목사 아버지와 독립운동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는 6·25 때 피란민 9만8000여 명과 62000여 명 등 총 16만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 공로로 둘 다 ‘6?25 전쟁 영웅’으로 선정됐다.

형의 이름은 현봉학(玄鳳學, 1922~2007). 함흥고보와 세브란스 의전(현 연세대 의대)을 졸업한 그는 광복 후 서울 적십자병원에 근무하다가 이화여대 영어 교수인 윌리엄스 부인의 주선으로 미국 버지니아주립의대로 유학을 갔다. 귀국해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한 지 3개월 만에 6·25가 터지자 피란지 부산에서 해군에 입대했다.

미군 지휘관 통역을 맡은 그는 미 10군 사령관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1950년 12월 23일 흥남 철수작전에 참여했다. 당시 흥남부두에는 중공군의 포위망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군인 10만5000여 명이 있었다. 철수작전에 여념이 없던 그는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울부짖는 피란민들을 보았다. 그 숫자가 9만8000여 명이나 됐다. 대부분이 공산주의에 반대해 유엔군에 협조한 사람과 기독교인들이었다.

미군 지휘부는 병력과 군수물자 수송에도 벅찬데 민간인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10군 사령관에게 “저들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의 눈물겨운 노력에 감동한 사령관은 군수물자를 모두 버리고 그 자리에 피란민들을 태웠다.

흥남부두를 마지막으로 떠난 배는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였다. 정원은 2000명. 레너드 라루 선장은 배에 실린 군수물자 25만t을 바다에 버리고 그 자리에 피란민 1만4000여 명을 태웠다. 훗날 ‘단일 선박으로 최다 인원을 구출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한 배는 이틀간의 항해 끝에 12월 25일 거제도에 도착했다. 희생자는 한 명도 없었고, 다섯 명의 아이가 배 안에서 태어났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 이 배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와 누나도 타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1953년 1월 거제에서 태어났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미국으로 간 현봉학은 펜실베이니아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토머스제퍼슨의대 등에서 교수로 활동하다 2007년 86세로 별세했다.

그의 동생 이름은 현시학(玄時學, 1924~1989)이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해군병학교(해군사관학교 전신) 1기로 임관한 그는 6·25가 터지자 곧 전장으로 달려갔다. 첫 임무인 서해안 봉쇄작전에서 신병 70명을 훈련시켜 12척의 적 수송선단을 물리쳤다. 통영작전에서는 고성에서 통영으로 진출하는 적에게 함포사격을 퍼부어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지원했고 낙동강 최후 방어선을 사수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의 활약은 피란민 구출작전에서 더욱 빛났다. 1951년 ‘1·4 후퇴’ 때 수많은 피란민이 황해도 서해안으로 몰려들었다. 형 현봉학이 동해안의 흥남부두에서 9만8000여 명을 구한 지 2주일 만에 그는 서해안의 황해도 장산곶에서 민간인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나섰다.

당시 PC-704함장(소령)이었던 그는 아군 함정들과 합동작전을 펼치며 하루에 최대 5000여 명까지 구출했다. 추격하는 적을 함포로 저지하면서 의용군과 그 가족 500여 명도 함께 탈출시켰다. 이렇게 20여 일 동안 구한 피란민이 6만2082명이었다.

그 와중에 국군 유격대 1200명을 상륙시켜 인민군 6군단 예하 1개 대대를 전멸시켰다. 목포항 소해작전과 원산만 소해작전 때는 북한이 설치한 기뢰 3000개 이상을 제거했다. 이런 공로로 금성을지, 금성충무, 미국동성훈장 등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1전단사령관과 함대사령관, 해군사관학교장 등을 맡았고 전역 후 모로코와 이란, 멕시코 대사로 활동하다 66세 때인 1989년, 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형과 동생이 모두 16만여 명의 피란민을 구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이들을 ‘한국의 쉰들러’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한 오스카 쉰들러가 2차 세계대전 때 나치로부터 구한 유대인 숫자는 1200여 명이었다.

이와 단순비교할 건 아니지만, 사지에 버려진 민간인 16만여 명을 구한 현봉학·시학 형제는 ‘한국의 쉰들러’ 정도를 뛰어넘는 인물이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들을 ‘세계의 현봉학’ ‘세계의 현시학’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벌써 6·25전쟁 70주년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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